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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

[5월의 독서일기]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5월에는 아파서 입원하고, 퇴원하면 일하느라 너무 바쁘고..

그리고 책도 너무 두꺼워서 단 한 권밖에 읽지 못했다. 아쉬운 한 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편
인문 분야 국내 작가로는 드물게 200만 부라는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작가, 출간하는 책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를 달성한 작가, 강연마다 청중이 꽉 들어차고 끝난 지 2년 넘은 팟캐스트가 아직도 상위권을 달리며 많은 사람이 기다려온 작가. 채사장이 5년 만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신작으로 돌아왔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필력으로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고 지루한 것을 재밌게 정리하는 기술은 여전하다. 다만 이전 시리즈에서 그의 현실 감각이 빛을 발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오랜 기간의 사유와 통찰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현대인은 여러 블랙미러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지식과 접한다. 그런데 이런 파편적인 지식들은 대부분 금세 휘발되고, 삶에 자리 잡지 못한다. 왜일까? 그것은 이 지식들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의 배경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종류는 많겠지만, 어떤 지식을 알려면 꼭 필요한 선(先)지식이 있다. 이것은 나와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개인의 관점과 세계관을 형성해주며, 일상에서 파생되는 지식들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번 책 [제로] 편은 당신이 진정한 지적 대화를 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접해야 하는 가장 근본 지식을 담았다. 이 책이야말로 지식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게 할 것이다. 나와 삶을 ‘나아지게’ 하는 바로 그 목표 말이다.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출판일
2019.12.24

 

1.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 채사장

★★★☆ 

나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책. 다 읽으면 엄청 뿌듯함.

종교의 존재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고, 나의 내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

 

하지만 책을 다 읽기 위해서는 꽤나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선뜻 추천해주지는 못하겠다.(무려 550페이지짜리. 너무 두꺼워서 조금 거부감 듦.)

 

나는 한때 채사장의 팬이었다. 지적인 사람을 좋아했는데, 지적이면서 말도 너무 잘해서 채사장을 너무 좋아했다. 그의 팟캐스트도 다 들었고, 그의 책도 사고 그랬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사그라들었는데.. 최근에 채사장이 지대넓얕 제로편 책을 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지대넓얕 시리즈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하고 도서관에 갔는데 이게 웬일. 이 책 왜 이렇게 두꺼워? 두께를 보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나의 채사장이니까. 도전해 봤는데.. 읽는 데 무려 3주나 걸렸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지대넓얕 시리즈보다 더 어려웠다. 다루는 시간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철학을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세계가 나라는 개념의 철학을 다루기 때문에 너무 어려웠다. 종교는 거의 무시하고, 과학이 진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세계가 나라는 개념은 도저히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읽어보았다. 왜냐하면 중간에 이런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류가 '신'을 놓지 못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가치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의 기원일 것이라는 상상은 나의 존재론적 하찮음을 해소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위안도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때면 쉽게 무너지고 만다. 만약 모든 존재가 실제로 신의 창조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그가 초공간의 다중 우주를 창조했고 영원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서 수없이 점멸하는 미니 우주들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봤다면, 그리고 그중 하나의 미니 우주에서 수천억 개의 은하가 탄생하고 죽는 것을 지켜보고, 그 중 하나의 작은 은하 변두리에 위치한 먼지보다 작은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서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본 이후에, 그 지구 위에 잠깐 존재하고 사라지는 인간의 삶에 그토록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기나 한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며 무신론을 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개입하는 것이 진정한 신비라며 유신론을 말할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P111~112.

 

이 문구를 읽는데 내가 너무 작은 존재,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더 알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답은 찾지 못하겠다. 채사장님은 내용을 쉽게 풀어주셨지만, 그냥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에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채사장님이 이 책 끝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세계관'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 신에게는 세계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슬픈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수감자라는 것을 모르는 수감자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세계관은 감옥이다. 감옥 안에 있는 자에게는 감옥 밖의 한 줌의 공간도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은 당신 내면의 감옥이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세계관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며 죽는다. 그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고, 심지어 그 바깥이 있는지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고 기독교도로 죽는다. 그는 한 번도 불교의 세계관에, 이슬람의 세계관에, 유물론의 세계관에 발을 디뎌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가 전부라고 믿으며 눈을 감는다. 어떤 이들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태어나 불교인으로 성장하고 불교도로 죽는다. 그는 한 번도 다른 세계관에 발을 디뎌보지 않고 눈을 감는다. 어떤 이들은 유물론자로 태어나서 유물론자로 죽고, 어떤 이들은 실용주의자로, 어떤 이들은 허무주의자로, 어떤 이들은 과학주의자로 태어나고 성장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세계관 같은 건 없다고 믿으며 눈을 감는다.

문제는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과 상념이 사실은 우리가 이원론의 세계관 위에 발 딛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갖게 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눈앞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도, 그래서 마음이나 정신은 소홀히 하고 눈앞의 물질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세계와 자아를 독립된 실체로 느끼며 자신이 소멸한 이후에도 세계가 존속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러니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의 내면은 보이지 않으니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자아와 세계 를 나누는 이원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갖게 된 사유의 흔적들이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것은 단 하나다.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해 보자. 그런데 나는 나의 세계관을 정립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감으면 나는 이 세상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채사장의 말처럼 내가 아는 것의 바깥으로 한번 나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소중한 책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함부로 소개해주지 못할 책인 것 같다. 특히 책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